샹산 거밍 지녠관 香山革命纪念馆

향산혁명기념관( 香山革命纪念馆 ) 자리는 향산공원 바깥으로, 홍풍로 길 동편이다. 녹음 짙은 광장을 지나자, 연한 갈색 건물 하나가 유유히 서 있다.

박물관예술관
  • 전화:

    010-62720075
  • 최적방문시기:

    사계절
  • 추천유람시간:

    1-2시간
  • 티켓가격:

    무료 예약제 입장 무료 예약제 입장
  • 개방시간:

    09:00 - 16:30 월요일 정기휴관

소개

샹산 거밍 지녠관 香山革命纪念馆

70년 전 3월 23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이끌고 시바이포(西柏坡)를 떠나, 북평으로 향했으며, 대이사의 목적지는 북평 시내와 20km 떨어진 서교 향산(香山)이었다. 1949년 3월 25일부터 1949년 8월 23일까지, 마오쩌둥 등 중앙 지도자들이 이곳에 단거한 지 5개월밖에 안 됐지만, 신중국 탄생 직전이었다. 이곳은 중국 혁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위대한 전환점, 승리에서 승리로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과정을 목격한 곳으로, 이게 명성이 자자하다.

2019년 9월 13일, 산자락에 있는 향산혁명기념관(香山革命纪念馆)과 향산공원(香山公园) 안에 있는 쌍정별장(双清别墅), 내청헌(来青轩), 쌍청 동측 평방, 사친사(思亲舍), 다운정(多云亭), 소백루(小白楼), 여주루(丽瞩楼), 진방루(镇芳楼), 진남방(镇南房) 등 혁명 터가 개방됐다. 개방 첫 주 12만여 명이 찾아, '신중국 초석 다지기'의 역사적 위업을 돌아보고, 중국 공산당원들의 애국초심과 장대한 뜻을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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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산 거밍 지녠관 香山革命纪念馆

70년 전 3월 23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이끌고 시바이포(西柏坡)를 떠나, 북평으로 향했으며, 대이사의 목적지는 북평 시내와 20km 떨어진 서교 향산(香山)이었다. 1949년 3월 25일부터 1949년 8월 23일까지, 마오쩌둥 등 중앙 지도자들이 이곳에 단거한 지 5개월밖에 안 됐지만, 신중국 탄생 직전이었다. 이곳은 중국 혁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위대한 전환점, 승리에서 승리로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과정을 목격한 곳으로, 이게 명성이 자자하다.

2019년 9월 13일, 산자락에 있는 향산혁명기념관(香山革命纪念馆)과 향산공원(香山公园) 안에 있는 쌍정별장(双清别墅), 내청헌(来青轩), 쌍청 동측 평방, 사친사(思亲舍), 다운정(多云亭), 소백루(小白楼), 여주루(丽瞩楼), 진방루(镇芳楼), 진남방(镇南房) 등 혁명 터가 개방됐다. 개방 첫 주 12만여 명이 찾아, '신중국 초석 다지기'의 역사적 위업을 돌아보고, 중국 공산당원들의 애국초심과 장대한 뜻을 되새겼다.


* 향산혁명기념관 香山革命纪念馆

향산혁명기념관 자리는 향산공원 바깥으로, 홍풍로 길 동편이다. 녹음 짙은 광장을 지나자, 연한 갈색 건물 하나가 유유히 서 있다. 남문 밖에는 28개의 복도 기둥이 햇살이 쏟아지고, 바닥에는 빛의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모체로 된 '향산혁명기념관' 현판이 높이 걸려 있고, 글씨는 대범하면서도 멋이 있다. 기념관은 건축면적 1만7985㎡에 신중국식 스타일로, 중국 전통의 기념식 건축물의 의식감을 살렸다.



기념관 설계가 정교하여, 28개의 복도 기둥은 중국 공산당이 28년 동안 고군분투한 세월을 상징한다. 기념관 2층 동편에는 '사량팔주(四梁八柱)'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중국 공산당 중앙 각 민주당파와 무당파 민주 인사들이 새 정권을 준비하고, 중앙인민정부를 구성하며, 신중국 탄생을 위해 지은 '사량팔주'의 역사를 의미한다. 동문 밖 광장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는 의미로 높이 19.49미터의 국기봉도 세워져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높이 8미터 도입부 홀은 '마오쩌둥 동지 향산'이라는 대형 테마 조형물이 한가운데 서 있고, 뒤편 320㎡의 거대한 유화 속에는 봄산이 웃고 노을빛이 곱게 비친다. 왼쪽은 '도강전투' 부조, 오른쪽은 중국 공산당원과 민주인사 20명이 국사를 상의하고 있다.


향산혁명기념관에는 '신중국 정초-중공중앙 재향산'의 주제 전람이 설치되어 있으며, 향산혁명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다. 전시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베이징 입성', ' 간부시험', '향산 주둔', '전중국 해방 지휘', '신중국 건설 계획', '초심을 잃지 않고 영원히 분투' 5개 부문, 15개 단원으로 구성됐다. 전시는 6000m² 규모로, 참관 동선은 약 900m다. 800여 장의 사진, 신문, 지도, 표와 문물 1200점(실물,문헌,기록물 포함)과 약간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홀에는 한장의 흑백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는 모 주석이 의자에 앉아 있고, 한 손에는 신분을 들고, 한 손은 무릎에 얹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신문에서 '남경해방'이라는 네 글자가 매우 눈에 띈다. 오른쪽은 '천리강 방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산산이 부서지고, 난징 반동정권이 멸망했다'는 기사 제목이 선명하다. 이 사진은 사진작가 쉬쇼빙이 향산 쌍청별장에서 찍은 것이다. 신문은 1949년 4월 25일자 '진보일보'로 이번에 전시장에 진열됐다.

5월 17일 오전, 향산혁명기념관은 2021년 국제박물관의 날 주제행사를 개최했다. 진귀한 도서 사료들은 해방군 출판사와 북경 출판 그룹이 각각 기증하여 입관하였다. 이 중 ''마오쩌둥 필적'은 소장본으로, '자작시사', '제사제자' ,'서간 편지', '문전서고', '비주찰기' ,'고인시사' 등 6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으며, 마오쩌둥 동지의 역사별 희귀 필적 1400여 점이 수록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 필적들이 매우 높은 문헌 가치와 사료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것들이 서법 예술의 보배라고 설명한다. 기증된 '성화요원(星火燎原)'은 1979년판, 2009년판, 2019년판으로, 마오쩌둥이 생전에 쓴 책 제목의 홍색 경전으로, 중국 혁명전쟁의 동양 서사시로로 불리며, 주더(朱德),저우언라이(周恩來),류사오치(劉少奇),덩샤오핑(鄧小平)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이 서문을 작성하거나, 제사를 쓰거나, 직접 원고 쓰거나 하여, 중국 혁명의 전투 과정을 전면적으로 회고한 대형 회고록 총서이다.

주소 : 北京市海淀区一棵松路与卧佛寺西路交叉路口东南侧( 서교선 향산역 입구 맞은 편)
공식사이트 https://www.xiangshan1949.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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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혁명기념지 香山革命纪念地

향산혁명기념관(香山革命纪念馆)과 향산공원(香山公园) 안에 있는 쌍정별장(双清别墅), 내청헌(来青轩), 쌍청 동측 평방, 사친사(思亲舍), 다운정(多云亭), 소백루(小白楼), 여주루(丽瞩楼), 진방루(镇芳楼), 진남방(镇南房) 등 혁명 터가 개방됐다

향산공원 香山公园

향산 공원(香山公园)은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금(金)대에는 황제의 수렵장이었다. 그 이후, 원·명·청시대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원이나 누각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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