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뤄구샹 南锣鼓巷

난뤄구샹 (南锣鼓巷 남라고항)은 베이징 둥청구의 아주 오래된 거리 중 하나로 너비가 그리 넓지 않으며, 원나라 대도(大都)의 당시 거리 및 후퉁(胡同, 골목)을 여전히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관광지 등급: AAA
후퉁골목
  • 최적방문시기:

    사계절
  • 추천유람시간:

    1-2시간
  • 티켓가격:

    무료 무료
  • 개방시간:

    개방형 관광지

소개

난뤄구샹 南锣鼓巷

난뤄구샹 (南锣鼓巷 남라고항)은 베이징 둥청구(东城区, 동성구)의 아주 오래된 거리 중 하나로 너비가 그리 넓지 않으며, 원나라 대도(大都)의 당시 거리 및 후퉁(胡同, 골목)을 여전히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시에서 중점적으로 보호하는 사합원(四合院) 거리로 남쪽 입구는 디안먼둥다제(地安门东大街, 지안문동대가), 북쪽 입구는 구러우다제(鼓楼大街, 고루대가)에 있으며, 외형상으로 봤을 때 마치 한마리 지네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우궁제(蜈蚣街, 오공가)’로 불리기도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동쪽에 있는 후퉁은 먀오더우후퉁(妙豆胡同, 묘두골목), 반창후퉁(板厂胡同, 판창골목), 둥몐화후퉁(东棉花胡同, 동면화골목), 베이빙마쓰후퉁(北兵马司胡同, 북병마사골목), 친라오후퉁(秦老胡同, 진로골목), 쳰위안언쓰후퉁(前圆恩寺胡同, 전원은사골목), 허우위안언쓰후퉁(后圆恩寺胡同, 후원은사골목), 쥐얼후퉁(菊儿胡同, 국아골목) 등 8개가 있고, 서쪽에 있는 후퉁은 푸샹후퉁(福祥胡同, 복상골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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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뤄구샹 南锣鼓巷

난뤄구샹 (南锣鼓巷 남라고항)은 베이징 둥청구(东城区, 동성구)의 아주 오래된 거리 중 하나로 너비가 그리 넓지 않으며, 원나라 대도(大都)의 당시 거리 및 후퉁(胡同, 골목)을 여전히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시에서 중점적으로 보호하는 사합원(四合院) 거리로 남쪽 입구는 디안먼둥다제(地安门东大街, 지안문동대가), 북쪽 입구는 구러우다제(鼓楼大街, 고루대가)에 있으며, 외형상으로 봤을 때 마치 한마리 지네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우궁제(蜈蚣街, 오공가)’로 불리기도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동쪽에 있는 후퉁은 먀오더우후퉁(妙豆胡同, 묘두골목), 반창후퉁(板厂胡同, 판창골목), 둥몐화후퉁(东棉花胡同, 동면화골목), 베이빙마쓰후퉁(北兵马司胡同, 북병마사골목), 친라오후퉁(秦老胡同, 진로골목), 쳰위안언쓰후퉁(前圆恩寺胡同, 전원은사골목), 허우위안언쓰후퉁(后圆恩寺胡同, 후원은사골목), 쥐얼후퉁(菊儿胡同, 국아골목) 등 8개가 있고, 서쪽에 있는 후퉁은 푸샹후퉁(福祥胡同, 복상골목), 쒀이후퉁(蓑衣胡同, 사의골목), 위얼후퉁(雨儿胡同, 우아골목), 마오얼후퉁(帽儿胡同, 모아골목), 징양후퉁(景阳胡同, 경양골목), 사징후퉁(沙井胡同, 사정골목), 헤이즈마후퉁(黑芝麻胡同, 흑지마골목), 쳰구러우위안후퉁(前鼓楼苑胡同, 전고루원골목) 등 8개로 총 16개의 골목이 있다.


원나라 시대의 대도성(大都城)은 50여 개의 골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난뤄구샹은 그 중 ‘자오후이팡(昭回坊, 소회방)’과 ‘징궁팡(靖恭坊, 정공방)’의 분계점에 위치해 있었다.

명나라 시대의 베이징은 28개 골목으로 나뉘어진 가운데 ‘자오후이(昭回, 소희)’와 ‘징궁(靖恭, 정공)’ 2개 골목이 합병되면서 ‘자오후이징궁팡(昭回靖恭坊, 소희정공방)’으로 불리게 되었고, 난뤄구샹은 바로 이 골목의 남북 중심축에 위치하게 되면서 ‘뤄궈샹(罗锅巷, 라과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명칭은 원나라 시대 때부터 이어져왔다는 설도 있다.


건륭(乾隆) 15년(1750)에 그려져 제작된 <경성전도(京城全图)>에는 명조의 뤄궈샹이 난뤄구샹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구러우둥다제(鼓楼东大街, 고루동대가) 중간 구간 도로 북쪽과 마주보고 있는 난뤄구샹 거리를 ‘베이뤄구샹(北锣鼓巷, 북라고항)’이라 불렀다.

베이뤄구샹은 원나라 시대의 ‘링춘팡(灵椿坊, 령춘방)’과 ‘진타이팡(金台坊, 금대방)’의 분계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명나라 시대 때도 동일했다. 원나라 시대 때 이 골목들의 남반부는 대부분이 관청과 사원이었으며, 명조로 바뀌고 나서도 큰 변동은 없었다.



청나라 초기의 난, 베이뤄구샹은 거의 황색 깃발로 채워지졌으며, 청나라 조정에서는 베이징을 병사, 평민의 성 거주지를 나눴으며, 팔기병(八旗兵)은 내성(内城)에, 한족 등은 외성에 거주케 했다. 난, 베이뤄구샹의 명칭은 건륭(乾隆) 15년에 정해졌으며, 당시는 청나라 초기였다.


청나라 초기부터 1930~40년대까지 난뤄구샹 내부의 10개가 넘는 골목 중에서 만족(满族) 양황기[청나라의 행정 단위로 이에 정황(正黃) / 양황(镶黄) / 정홍(正紅) / 양홍 / 정백(正白) / 양백 / 정남(正藍) / 양남에 팔기(八旗)를 배치] 주민들에 의해 점차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대부호 세가를 비롯해 적지 않은 가난한 시민들도 있었지만 주민들은 점차 이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난뤄구샹 내부의 소규모 상업자들 역시 성업하기 시작해 곡물상점, 채소점, 기름상점, 돼지고기점, 양고기점, 칼국수집, 떡집, 잡화상점, 과자가게, 두부집, 건축자재소, 거적떼기집, 천막집, 철물점, 가마집, 장의사집, 병원, 약국, 도배집, 이발소, 옷가게, 신발가게, 문구점, 찻집, 전당포 등 다양한 상점들이 있다.


비록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30여 종류의 상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비교적 큰 상호의 비단가게, 찻집, 음식점, 보석가게 등은 디안먼와이다제(地安门外大街, 지안문외대가), 구러우(鼓楼, 고루)에 집중되어 있다.



* 난뤄구샹 골목은 남북길이 약 800미터이며, 2016년 초 현재 약 200개의 작은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현재 지하철을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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