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극전 (皇极殿)은 녕수궁(宁寿宫) 구역의 메인 건축으로, 청 강희28년 (1689年)에 처음 건설되어 초기 명칭은 녕수궁(宁寿宫)이 었다. 건륭 37년 (1772年)부터 41년 (1776年) 까지 녕수궁 지역을 개조 건축할 때, 녕수궁을 황극전으로 개명하였으며, 건륭황제가 권력을 이양한 후에 머물 공간으로 하였다.
황극전의 위치는 녕수궁 구역 중추선 앞부분으로, 후전인 녕수궁과 앞뒤로 단층 석대 기좌 위에 배열되어 있다. 전당은 남향이며, 폭은 9칸, 깊이는 5칸으로 '제존구오(帝尊九五)' 의 형식과 제도를 따랐다. 황색 유리기와 겹처마 무전정 건축으로 앞 처마 쪽에 복도를 내고, 금칠 용조각 작체(浑金雕龙雀替)를 장식했다.
명간(明间)과 좌우 차간(次间)에 문을 설치, 나머지 차간 아래 벽은 함장 (槛墙)으로 하였다. 후처마 명간과 차간을 전당 후문으로 하여 녕수궁으로 통하게 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벽을 쌓았다. 전당 중간 4개 금박 용문양 기둥 (根沥粉贴金蟠龙柱)이 ...
황극전 (皇极殿)은 녕수궁(宁寿宫) 구역의 메인 건축으로, 청 강희28년 (1689年)에 처음 건설되어 초기 명칭은 녕수궁(宁寿宫)이 었다. 건륭 37년 (1772年)부터 41년 (1776年) 까지 녕수궁 지역을 개조 건축할 때, 녕수궁을 황극전으로 개명하였으며, 건륭황제가 권력을 이양한 후에 머물 공간으로 하였다.
황극전의 위치는 녕수궁 구역 중추선 앞부분으로, 후전인 녕수궁과 앞뒤로 단층 석대 기좌 위에 배열되어 있다. 전당은 남향이며, 폭은 9칸, 깊이는 5칸으로 '제존구오(帝尊九五)' 의 형식과 제도를 따랐다. 황색 유리기와 겹처마 무전정 건축으로 앞 처마 쪽에 복도를 내고, 금칠 용조각 작체(浑金雕龙雀替)를 장식했다.
명간(明间)과 좌우 차간(次间)에 문을 설치, 나머지 차간 아래 벽은 함장 (槛墙)으로 하였다. 후처마 명간과 차간을 전당 후문으로 하여 녕수궁으로 통하게 하고, 나머지 공간에는 벽을 쌓았다. 전당 중간 4개 금박 용문양 기둥 (根沥粉贴金蟠龙柱)이 있으며, 천정에는 팔각 도금 용무늬 천정(八角浑金蟠龙藻井)을 설치하고, 그 아래 보좌를 두었는데, 그 등급은 태화전 (太和殿) 다음이었다. 전당 내에 좌측에는 물시계(铜壶滴漏),우측에는 자명종(大自鸣钟)을 두었는데, 제작이 매우 정교하다.
전당은 청백옥 수미좌 위에 지어져 있으며, 대전 앞에는 월대(月台)가 있다. 어로 (御路)와 통로가 서로 연결되어, 녕수문으로 바로 이어지며, 네 주변에는 한백옥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월대 좌우 및 통로 양측에 각각 계단을 설치했다. 대전 양측은 수화문 (垂花门), 간장(看墙)이 설치되어 있어, 동서 복도 (庑房)와 서로 연결하였고, 원락을 전후 2진원락으로 구분하였다. 회랑(庑)에도 문을 설치했는데, 동쪽은 응기문(凝祺门)이고 서쪽은 창택문(昌泽门)이다.
황극전 단폐 (丹陛) 좌우에는 해시계(日晷)과 측량기(嘉量)를 각각 배치하였으며, 이는 황권을 상징하는 중요한 진열품이었다. 어도 양측에 각각 육각 수미좌 하나씩이 있고, 그 위에 겹처마 육각정을 설치했는데, 몸통 각 면에는 전서 寿자가 3개 씩 새겨져 있다. 석좌 중심에는 주철담(铸铁胆)이 있어, 매년 섣달 23일에서 정월 보름까지 그곳에 등을 켰는데, 이는 고대 다용도 기좌의 사례라 할 수 있으며, 현재 받침부만 남아 있다. 그외, 건륭37년 (1773年)에 거북 동상과 학 동상 각 한 쌍 그리고 정로(鼎炉) 두 쌍을 세웠는데,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극전은 건청궁을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가경 원년 (1796年) 정월에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황 건륭제는 이곳에서 천수안(千叟宴)을 거행했는데, 연회에서 90세 이상의 노인을 초청하였으며, 초대된 신하와 덕망 높은 노인(耆老)들을 비롯하여 자리가 없는 사람까지 5천 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가경 7년 (1805年), 광서10년(1884年)에 차례로 보수를 했다. 광서 20년(1894年)에 황극전에서 자희 환갑 잔치가 열렸다. 광서30년(1904年)에는 서태후 자희의 70세 고희를 전후로, 이곳에서 서방 9개국 사신을 각각 접견하기도 했다. 자희가 죽은 후에 이곳에서 장례 (停灵、治丧)를 치렀다.
황극전 채화는 원래 화려한 금룡 채화 (金龙和玺彩画)였으나, 자희태후 환갑잔치를 이곳에서 치른 후에, 외처마는 편안한 소주식 채화(苏式彩画)로 바꾸었다. 1979년에 새로 보수한 후에, 건륭 시기의 풍모로 복원했다.
번역편집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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