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궁 첸칭궁

건청궁(乾清宫), 내정 후삼관의 하나다. 명대 영락 18년 (1420年)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명청 양대 시기에 여러 차례 화재가 나고 또 다시 재건했다. 현재 건축은 청대 가경3년(1798年)에 건설한 것이다.

소개

구궁 첸칭궁

건청궁(乾清宫), 내정 후삼관의 하나다. 명대 영락 18년 (1420年)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명청 양대 시기에 여러 차례 화재가 나고 또 다시 재건했다. 현재 건축은 청대 가경3년(1798年)에 건설한 것이다.

건청궁은 황색유리기와 겹처마 무전정 형식이며, 단층의 한백옥 석대 기단 위에 자리한다. 외부 복도 포함하여 가로 폭은 9칸, 세로 깊이는 5칸, 건축 면적은 1400평방미터, 기단에서 부터 지붕 용마루까지는 높이 20여 미터, 처마 모퉁이에는 9개 짐승상(脊兽)이 설치되어 있다. 처마 밑 상층은 단교쌍앙칠채두공 (单翘双昂七踩斗栱), 하층은 단교단앙오채두공(单翘单昂五踩斗栱)이며, 금룡 채화로 장식했고, 창과 문은 삼교육완 마름모문양 (三交六椀菱花)으로 장식되었다.

전당 내부 명간 (明间)과 동서 차간(次间)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명간 앞처마 금주(金柱)를 없애고, 들보 구조로 하는 감주조(减柱造) 형식을 사용하여, 실내 공간을 넓게 하였다.


후처마 두 금주 사이에 병풍을 설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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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궁 첸칭궁

건청궁(乾清宫), 내정 후삼관의 하나다. 명대 영락 18년 (1420年)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명청 양대 시기에 여러 차례 화재가 나고 또 다시 재건했다. 현재 건축은 청대 가경3년(1798年)에 건설한 것이다.

건청궁은 황색유리기와 겹처마 무전정 형식이며, 단층의 한백옥 석대 기단 위에 자리한다. 외부 복도 포함하여 가로 폭은 9칸, 세로 깊이는 5칸, 건축 면적은 1400평방미터, 기단에서 부터 지붕 용마루까지는 높이 20여 미터, 처마 모퉁이에는 9개 짐승상(脊兽)이 설치되어 있다. 처마 밑 상층은 단교쌍앙칠채두공 (单翘双昂七踩斗栱), 하층은 단교단앙오채두공(单翘单昂五踩斗栱)이며, 금룡 채화로 장식했고, 창과 문은 삼교육완 마름모문양 (三交六椀菱花)으로 장식되었다.

전당 내부 명간 (明间)과 동서 차간(次间)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명간 앞처마 금주(金柱)를 없애고, 들보 구조로 하는 감주조(减柱造) 형식을 사용하여, 실내 공간을 넓게 하였다.


후처마 두 금주 사이에 병풍을 설치하고, 그 앞에 보좌를 설치하였으며, 보좌 위에 "정대광명(正大光明)" 현판을 걸었다. 동서 초간(梢间)은 난각(暖阁)으로 삼고, 후처마에 선루(仙楼)를 설치, 양측 진간(尽间)을 통로(穿堂)로 삼아, 교태전(交泰殿), 건녕궁(坤宁宫)과 통하도록 하였다.

전당 내에는 금벽돌 (金砖)을 깔았다. 전당 앞쪽의 넓찍한 월대(月台) 위에는 좌우로 나누어 동어(铜龟), 동학(铜鹤), 해시계(日晷), 측량기(嘉量)를 설치하고, 앞쪽에는 도금 향로 4개를 두었으며, 정중앙에 단폐 (丹陛) 계단을 두어, 월대와 건청문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하였다.




건청궁 건축 규모는 내정에서 으뜸이며, 명대 황제의 침궁으로서 영락 황제 주겸(朱棣)부터 숭정황제 주유검 (朱由检)까지 총 14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거주했다. 궁전이 큼직하고 공간이 넓기에, 황제가 이곳에서 거주할 때는 여러 개 방으로 분리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명대 건청궁에는 난각 9칸이 있었으며, 상하 2층으로 구분되었고, 침상은 총 27개가 설치되어, 황후와 후궁들을 들일 수 있었다.

방과 침대가 많았기에, 황제가 매일 저녁 거주하는 곳은 소수만이 알았으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할 수 있었다. 이렇듯 미로 같은 궁궐과 삼엄한 경비가 있었지만, 황제가 마음 놓고 편히 잠을 청하기는 어려웠다. 기록에 따르면, 가정년간에 "임인궁변 (壬寅宫变)" 이 발생한 후에 세종은 서원으로 이주했으며, 감히 건청궁으로 돌아와 거주할 수 없었다. 만력제의 정귀비가 황태후 자리를 뺏기 위해 벌인 "홍환안(红丸案)" 과 태창비 이선시가 황후가 되기 위해 인수전으로 이주한 "이궁안(移宫案)" 사건이 모두 건청궁에서 발생하였다. 명대 건청궁은 또한 황제의 경야(守丧)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청대 강희제 이전, 건청궁은 명나라의 관습을 답습했다. 옹정황제가 양심전으로 이주한 후부터 이곳은 황제의 궁궐 대신 소견, 상소문 처리, 일상 정무 처리, 사신 접견 그리고 축하연이나 연회 등을 거행하는 중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일부 일상사무기구와 황자 독서방도 모두 건청궁 주위의 곁방으로 이전하였으며, 건청궁의 사용 기능이 매우 강화되었다.

옹정 원년에는 황태자 책봉 밀서를 건청궁의 '정대광명' 편액 뒤로 두기로 하였다. 또, 강희 건륭 시기에는 이곳에서 천수연(千叟宴)을 거행했었다.

현재 건청궁은 청대 시기 모습으로 복구 진열전시중이다.

번역편집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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