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궁 바오허덴

보화전 (保和殿)은 고궁 외조 3대전의 하나다. 중화전 (中和殿)의 뒤에 위치하며, 명 영락18년 (1420年)에 처음 건설, 초기 이름은 근신전(谨身殿)이었으며,

소개

구궁 바오허덴

보화전 (保和殿)은 고궁 외조 3대전의 하나다. 중화전 (中和殿)의 뒤에 위치하며, 명 영락18년 (1420年)에 처음 건설, 초기 이름은 근신전(谨身殿)이었으며, 가정 시기에 화재를 당하고, 새로 건축한 후에 건극전(建极殿)으로 개명했다. 청 순치2년에 보화전으로 개명했다.



보화전의 규모는 폭 7칸, 깊이 5칸이며 면적은 1240 평방미터, 높이는 29.5미터다. 지붕은 겹처마 헐산정이며, 황색유리기와가 덮여있고, 상하 처마 모퉁이에는 모두 9개의 짐승상 (脊兽)이 설치되어 있다. 상처마는 단교중앙칠채 두공(单翘重昂七踩斗栱) 형태이고, 하처마는 중앙오채 두공(重昂五踩斗栱)이다. 안팎 처마는 모두 금룡 채색그림이 있으며, 천정 무늬는 분말 금가루를 붙여 만든 용의 정면화가 있다. 천정 대들보 채화는 매우 독특하며, 단홍색 편중의 장식 및 진열품과 어울려 화려하면서도 부귀롭다.


전당 내부에는 금벽돌(金砖)이 깔려 있고, 남향으로 금칠 보좌가 놓여있다. 동서 양측에는 난각(暖阁)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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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궁 바오허덴

보화전 (保和殿)은 고궁 외조 3대전의 하나다. 중화전 (中和殿)의 뒤에 위치하며, 명 영락18년 (1420年)에 처음 건설, 초기 이름은 근신전(谨身殿)이었으며, 가정 시기에 화재를 당하고, 새로 건축한 후에 건극전(建极殿)으로 개명했다. 청 순치2년에 보화전으로 개명했다.



보화전의 규모는 폭 7칸, 깊이 5칸이며 면적은 1240 평방미터, 높이는 29.5미터다. 지붕은 겹처마 헐산정이며, 황색유리기와가 덮여있고, 상하 처마 모퉁이에는 모두 9개의 짐승상 (脊兽)이 설치되어 있다. 상처마는 단교중앙칠채 두공(单翘重昂七踩斗栱) 형태이고, 하처마는 중앙오채 두공(重昂五踩斗栱)이다. 안팎 처마는 모두 금룡 채색그림이 있으며, 천정 무늬는 분말 금가루를 붙여 만든 용의 정면화가 있다. 천정 대들보 채화는 매우 독특하며, 단홍색 편중의 장식 및 진열품과 어울려 화려하면서도 부귀롭다.


전당 내부에는 금벽돌(金砖)이 깔려 있고, 남향으로 금칠 보좌가 놓여있다. 동서 양측에는 난각(暖阁)이 있으며, 판문(板门两扇)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로 여의운룡 비려모(如意云龙浑金毗庐帽)가 장식되어 있다. 건축상으로 감주조(减柱造) 방법을 채용하였는데, 전당 내 앞처마 금주를 6개로 줄여서 공간감을 넓게 하였다.

보화전은 명청 양대 시기에 사용처가 달랐다. 명나라 시기에는 대전 행사 전에 황제가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었으며, 청나라시기에는 매년 그믐, 정월 대보름에 황제가 왕공 대신들에게 연회나 전시(殿试) 시험 등을 이곳에서 거행했다.

청순치3년(1646)에서 13천(1656)까지, 순치황제는 이곳 보화전에서 거주한 적이 있으며, 당시에 보화전은 "위육궁(位育宫)" 으로 불렀으며, 그의 혼사 역시 이곳에서 거행했다.

강희제도 즉위 후 8년(1669)까지 보화전에서 거주했으며, 당시에는 "청우궁(清宁宫)"이라 불렀다. 두 황제가 보화전에 거주할 시에 임시로 전당의 명칭을 개명한 것이다. 청대 전시(殿试)는 건륭년간 부터 이곳 보화전에서 거행하였다.

(번역 편집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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